정치나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상식이 있다. 정치와 종교는 언제나 한 몸이었다는 것을 것이다. 물론 점쟁이나 무당 또는 도사라고 불리는 마이너리그 관계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나 과한 것이 문제다. 종교나 사이비에 너무 기대어 나라를 국밥에 말아 먹은 위정자들의 이야기는 어느 나라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의 누가 더 시원하게 국가를 털어 먹었는지 한 번 알아 보도록 해보자
중국 - 육갑신병이 육갑을 떨다
중국 북송의 제8대 왕이었던 송 휘종은 중국은 물론 전세계의 황족 가운데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천재 예술가였었다. 그가 개발한 수금체라는 서체는 현재도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수많은 명시를 남긴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서 보다 뛰어났던 분야가 그림이었다고 할 정도로 그의 예술적 재능은 뛰어 났었다.
하지만 신은 항상 공평하다. 그에게 예술가적 재능을 주는 대신 황제로써의 정치적 능력은 미처 배분을 못했던 것이다. 치정에 관심이 없던 휘종의 주위에는 간신배들 밖에 남지 있지 않았다. 간신배들이 국정 농단을 하는 동안 휘종은 본인의 취미와 주색잡기에 빠졌 던 것이다. 휘종은 자신의 그림을 그릴 정원을 만들기 위해 산을 밀고 기암 괴석을 배에 실어 나르는 대공사를 진행하였다, (중국판 사대강 사업??)
이러한 황제의 고급 취향 덕분에 백성들은 노역과 세금의 이중고에 빠지게 되며 생지옥을 맛보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쓰여진 소설이 바로 「수호지」이다. 하지만 이러한 내치보다 더 심각했던 건 국방 외교이었다. 그 시절 요나라를 무너트리기 위해 금나라와 손을 잡았던 북송은 전쟁을 이긴 후 금나라를 배신하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송 휘종은 자신들의 능력을 생각하지도 않은 채 오랑캐라는 이유를 들어 무턱대고 금나라를 치려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이런 계획을 간파한 금태조는 배신감에 치를 떨며 분연히 군병을 일으켜 북송으로 진격하게 된다. 예상치 못한 금의 선제공격에 휘종은 크게 당황하며 자구책을 마련하게 된다. 그 해결책이란 것이 도교 점술가이자 사기꾼이었던 곽 경을 방어군의 총책임자로 앉힌 것이다. 당시 곽경은 도교의 육갑법에 정통한 인물이었다. 육갑의 간지에 해당되는 사람 7,777명을 선발하여 출전하면 필승 해법을 내놓았으며 실제로 훈련도 안 되어 있던 농민들을 포함한 7,777명을 모아 출전시켜 버린다.
이들을 육갑신병이라고 칭한 곽 경은 하늘이 정한 길일에 전투를 벌여야 한다며 정예군을 모두 뒤로 물리게 한다. 그렇게 아무 저항 없이 금나라 군대는 변경 문 앞까지 쳐들오게 되고 마침내 육갑신병의 출정이 이루어 지게 된다. 하지만 아무런 군사훈련과 전술 없이 나간 육갑신병들은 금나라에 추풍낙엽처럼 썰리게 되고 곽 경은 생사도 알 수 없이 행방불명 되고 만다. 이 어이없는 선택으로 변경은 물론 수도인 개봉까지 함락되며 송 휘종과 그의 아들 흠종은 그 후 금나라에 포로로 잡혀 가게 된다. 그 후 두 사람은 살아 생전 고국으로 돌아 오지 못한 채 금나라에서 사망했으며 북송도 그렇게 허망하게 멸망하고 만다.
러시아 – 신이라 불리던 사나이
20세기 초 제정 러시아의 니콜라이2세는 격동하는 세계 정세에 대항할 능력이 전혀 없는 유약한 황제였었다. 그 시절 제정 러시아는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농노 중심 국가였으며 국민들의 삶은 굶어 죽기 일보 직전의 처참한 현실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 그가 선택한 정치적 파트너는 떠돌이 수도자였던 그리고리 라스푸틴이었다.
라스푸틴은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집에서 쫓겨 난 후 세계 각지의 정교회 성지만을 찾아 다녔던 떠돌이 수도자였었다. 그러다 우연히 니콜라이2세의 유일한 왕위 계승자였던 알릭세이 황태자의 혈우병을 고쳐 주며 인생 역전을 대박을 터트리게 된다. 실제로 고쳤다기 보다는 운좋게 황태자의 환우가 좋아졌을 때 라스푸틴이 그 옆에 있었다고 하는게 맞을 것이다.
그렇게 제국의 황태자를 살린 돌팔이 수도자는 니콜라이 황족들에게 현생한 신의 대우를 받게 된다. 속옷 차림으로 공주들의 방을 드나들 정도로 라스푸틴에 대한 황실의 믿음과 신뢰는 상상 그 이상이던 것이다. 심지어 공주들의 보모를 강간한 일이 생겼을 떄에도 황후는 이 역시 성스러운 신의 계시라며 그를 두둔하는 믿지 못할 일까지 생기게 된다. 무능한 황실의 무조건적인 라스푸틴에 대한 신뢰는 귀족과 국민들의 불만을 키워 가게 된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무능했던 니콜라이2세는 국내의 정치와 외교 정책까지 그의 조언대로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었다.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터지고 만다. 라스푸틴은 독일과 대치 중이었던 러시아의 병력을 남쪽으로 이동하여 교전하면 더 이로울 것이라는 계시를 내리게 된다. 물론 그 어떤 전술적인 이유는 없었다. 니콜라이2세는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계시대로 러시아군을 남하시켜 버린다, 결국 이러한 선택은 서부 곡창지대와 우크라이나를 독일에 넘겨주는 최악의 결과를 낳게 된다. 러시아에 가장 중요한 경제적 지역을 잃게 되면서 어렵던 국내 경제 사정과 세수는 더욱 더 악화일로를 걷게 된것이었다.
이러한 니콜라이2세의 전쟁의 패배는 재정 러시아 몰락의 방아쇠 역할을 하게 된다. 결국 라스푸틴에 불만을 품고 있던 러시아 귀족들은 더 이상 참을수 만은 없었다. 귀족 대표들은 비밀리에 재판을 열어 라스푸틴을 제거하기로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귀족 대표들은 1916년 12월 30일 송년 파티에 그를 초대해 청산가리로 독살하기로 계획한다. 아무 의심 없이 참석한 라스푸틴은 독이 든 술과 케잌을 먹으며 파티를 마음껏 즐긴다. 하지만 다량의 독을 먹은 라스푸틴은 2시간이 지나도 죽지 않았으며 심지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기까지 하였다. 이에 놀란 귀족 암살자의 주동자 펠릭스는 가슴에 품었던 총을 꺼내 라스푸틴에게 여러 발을 명중시켜 버린다. 하지만 총을 맞고도 그는 죽지 않았으며 결국 암살자들의 곤봉과 쇠사슬에 의한 무차비한 린치를 당한 후에야 쓰러지고 만다.
그렇게 기절한 라스푸틴을 말에 매어 근처의 네바 강에 수장 시켜 버린다. 하지만 후에 사체 부검을 한 라스푸틴의 최후 사인은 놀랍게도 익사였었다고 한다. 라스푸틴이 죽은 지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니콜라이2세와 황실 가족들은 모두 볼셰비키 혁명단원들에게 숙청 당하며 러시아 황실은 막을 내리게 된다. 세월이 흐른 후 발굴된 황녀들의 사체 옷에서는 라스푸틴의 사진이 부적처럼 고이 간직되어 발견되었다고 한다.
조선 - 선무당, 나라를 말아먹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던 민비는 장호원에 숨어 지내며 절치부심 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민비에게 찰싹 붙어 멘탈관리를 해주었던 사람이 무당 박창렬이었다. 미색과 화려한 입담을 가졌던 이 여자 무당에 민비는 홀딱 빠져 버렸다. 그 후 다시 시아버지인 대원군을 밀어내며 권력을 되찾은 민비는 이 여자 무당과 함께 화려하게 환궁을 하게 된다. 민비는 그녀에게 진령군(眞靈君)이라는 칭호를 내려주고 관운장을 모시는 그녀를 위해 명륜동 송시열이 살았던 집터에 그녀의 사당을 지어주기 까지 한다. 이 사당의 이름은 북묘(北廟)라고 하였으며 고종은 이 사당의 비문을 직접 지어 주기까지 했었다. 고종이 밝힌 북묘를 지은 이유는 그가 꿈에서 관운장을 보았으며 이러한 이유로 사당을 짓고 그를 대대손손 따르겠다는 것이었다.
고종은 그의 왕세자와 함께 북묘에 가서 제사를 지낼 정도로 그녀를 신뢰하고 의지하였다. 한마디로 부부 모두 그녀의 열렬한 신도였던 셈이다. 민비의 비호를 받던 박창렬의 북묘는(용산 아님 주의) 그 시대 성공의 보증수표와도 같았던 성지로 유명해진다. 한마디로 관직과 돈이 함께 나오는 조선 최고의 아방궁이었다.
또한, 그녀와 민비가 나누었던 지난 밤 얘기는 다음 날 국가 정책으로 둔갑해 하교가 내려졌다. 민비는 박창렬을 언니라고 불렀으며 이러한 만행은 실록과 개인들의 역사 기록물에 낱낱이 실릴 정도의 엄청난 스캔들이었다.
10년 이상 무너지지 않았던 이 절대권력은 명성황후의 죽음과 함께 허무하게 막을 내리게 된다. 1894년 갑오개혁 최고 기관인 군국기무처에 의해 체포된 박창렬은 거열형의 선고를 받게 된다. 형 집행 여부는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그 후 그녀의 생사에 대한 어떠한 기록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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